나는 뭘까....?

비행운 - 서른

2020. 3. 19. 21:09

무엇이 보통인지는 모르지만,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곳 언저리에 금이라도 한번 밟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요.

눈꺼풀 위로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잠을 어쩌지 모해 만날 헤드뱅잉만 하다, 먼저 잠자리에 든 건 제 쪽이었으니까요.

하루 일을 마치고 고단하게 잠든 서울의 얼굴 같기도 하고요.

아무튼 오늘도 멀리 캄캄한 도시 위엔 붉고 노랗고 희고 푸른 불빛들이 알사탕처럼 뿌려져 있어요.

 

 

알람 소리 어지러운 육교를 지나, '노량도'에 입성한 게 엊그제 같은데. '합격해야 탈출 할 수 있는 섬'이라고. 다들 그런식으로 우스갯소릴 하곤 했잖아요.

그사이 언니에게도 몇 줄로는 요약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지나갔겠죠? 바람이 계절을 거둬가듯 세월이 언니로부터 앗아간 것들이 있을 테죠?

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,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.

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, 사람을 믿지 못하고,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,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.

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.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. 저 혼잠나 이도 저도 아닌채,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. 아니,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. 

이전에 절박했던 문제는 그다음 과제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걸 아는 나이일 테니까요.

 

 

외국어를 몸 안에 지니고 다니면 칼을 찬 듯 어디서든 든든할 것 같았거든요.

왜 물이 한가득 든 투명한 비커 안에 스포이트로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생기며 액체의 성질이 바뀌게 되잖아요?

요즘 저는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요.

"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........ 겨우 내가 되겠지."

어느 날 눈뜨고 보니 제가 다른사람이 돼 있더라고요. 이전에도 채무자, 지금도 채무자, 예나 지금이나 빚을 진 사람이라는 건 똑같은데. 좀더 나쁜 채무자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요.

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누군가에게 '케이크가 들어 있지 않은 케이크 상자'를 보내고픈 심정이었어요.

 

 

 

저랑 헤어질 즈음엔 이미 삼십대 초반의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던 사람인데....... 사치를 한 것도 사채를 쓴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논문 쓰다보니 그렇게 돼 있었거든요.

그리고 그때 저를 위로해준 건, 제가 직접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누군가의 체온이었어요. 욕망이나 쾌락은 그다음 문제였지요. 어쩌면 사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온기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.

"살아보니 사람이 제일 큰 재산인 거 같더라."

요즘 같은세상에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만큼 믿고 싶은 교리가 또 어디 있겠어요.

 

 

 

그때 제게 뚫어져라 보고 있던 건 10년전, 누군가 빵집 카드 위에 또박또박 적어 넣은 바로 제 이름이었으니까요.

비석처럼 거기 그 네모난 칸에 적힌, 먼 과거에서 배달된 제 이름을 보자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거든요.

 

 

 

가을이 깊네요.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.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? 부푼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.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.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'그렇다'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은데. 어쩌따, 나,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.

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,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,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.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. 나, 좀 늦었어도 잘했지.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.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,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.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. 정말 중요한 '돈'과 역시 중요한 '시간'을 헤아리며, 초조해질 때마다, 한 손으로 짚어왔고,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. '어찌해야 하나.'

바뀌는 건 상황이 아니라 사람일까요. 그렇다면,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바꿀 수 없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.

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는 거 같다고.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,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.  

 

 

 

 

 

 

서른이 되면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 라는... 막연한 생각이있었다.....

그래도 30이면 뭐라도 하고있겠지.... 30이란 숫자가 그랬다....

나의 노력이 아직 부족한거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.

정말 미친듯이 죽도록 숨 안쉬고 열심히했냐? 그건... 아닌 것 같다.....

분명 하고싶은거 다하고 남들 쉴때 쉬고 보상심리가 상당히 컸던것같다.

뭐 ... 그건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건가?

근데 그것 또한 자기합리화겠지.... 나는 자기합리화의 달인인 것 같다.

어제 열심히 했으니 오늘은 좀 쉬어도 되지 않겠나... 내일 열심히 하면되지 

그러면서 미루는게 많아지고 하고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건 정말 하기 싫어하는 것 같다.

정말 정신 차리자. 정말로 변하자. 바뀌자. 그래야 한다. 그래야 하고!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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